멕시코전 전반전을 0-0으로 마친 직후 생각은 “좋은 경기 운영을 했다”였다.
흔히 ‘게임 매니지먼트(Game management)’라 불리는 ‘경기 운영’이란, 지금 당장 승리를 위해 파상공세를 펼치지 않아도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거쳐야 하는 과정을 뜻한다. 한국은 지난 멕시코전 초반을 지나며 경기 흐름이 일정 부분 안정세에 접어들자 볼을 소유하며 경기를 주도했지만, 앞서 2-1 역전승을 거둔 체코전과 비교하면 전진하겠다는 의도가 보이는 패스를 현저히 줄인 모습이었다. 한국은 물러선 상대 대형 안으로 굳이 들어가지 않고, 볼을 돌리며 상대 대형이 뒷공간을 비우고 올라올 타이밍을 기다렸다. 이 때문에 경기 템포가 크게 떨어졌지만, 무난하게 전반전을 0-0으로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어렵게 찾은 그 안정감은 후반 초반 5분 만에 변수를 맞았다. 예상치 못한 순간적 실수로 선제골을 실점한 것. 여기서 코칭스태프의 결정은 체코전과 거의 똑같았다. 홍명보 감독은 이번에도 똑같이 이재성 대신 황희찬을, 손흥민 대신 오현규를 투입했다. 그러나 경각심이 느껴진 체코전 후반과 달리, 한국은 멕시코전에서는 실점한 후에도 경기가 0-0이었을 때 이어간 흐름을 그대로 유지했다. 한 골 차로 뒤진 상황에서도 플레이하는 방식에 전략적 변화는 보이지 않았고, 멕시코전은 엄지성의 크로스에 이은 조규성의 헤더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기회조차 만들지 못한 채 0-1 패배로 마무리됐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홍명보 감독이 이와 같은 소극적인 경기 운영을 25일(한국시각) 남아공전에서도 이어갔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번에는 아예 황희찬, 오현규가 교체 출전이 아닌 이재성과 손흥민을 대신해 선발 출전했지만, 결과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0-1 패배. 홍명보 감독은 이번 FIFA 월드컵 2026 조별 리그 내내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는 매 기자회견마다 반복적으로 선수들에게 “하던대로 하면 된다”는 주문을 했다고 밝혔다. “하던대로 하면 된다”는 우리가 과거 파울루 벤투 감독에게서도 자주 듣던 말이다. 실제로 벤투 감독은 4년 내내 자신이 선택한 주축 선수진과 전술적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벤투 감독과 달리, 홍명보 감독은 대회 직전까지 실험을 거듭했다. 대회를 약 1년 앞둔 시점 팀의 기본 포메이션에 큰 변화를 줬고, 이후 선발 라인업 구성도 대회 첫 경기를 앞둔 시점까지 스타팅11을 예상하기가 어려웠을 정도로 평가전에서 줄곧 잦은 변화를 시도했다. 지난 9월 미국전을 시작으로 이달 초 엘살바도르와의 최종 평가전까지 치른 총 10경기에서 김진규가 중앙 미드필더로 여섯 경기에 선발 출전했지만, 그는 정작 본선에서는 세 경기 연속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됐다. 홍명보 감독은 월드컵 직전 최종 캠프에서 트리니다드토바고와의 후반전과 엘살바도르전 스타팅 중원 조합을 이재성-황인범으로 맞춰놓고도 정작 본선에서는 백승호를 홀딩 미드필더로 기용했다.
그렇다면 홍명보 감독이 반복적으로 언급한 ‘하던대로 한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던 걸까?

한국 대표팀의 압박 강도(PPDA)
7.1회 – 아시아 3차 예선(90분당 평균) 11.87회 – 9월~6월 평가전 10경기(90분당 평균) 10.75회 – 체코전 15.13회 – 멕시코전 20.31회 – 남아공전 정말 이를 보고도 우리가 ‘하던대로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압박 강도를 뜻하는 PPDA(Passes Played per Defensive Action)는 ‘우리팀의 수비 액션 1회당(태클 시도, 가로채기, 압박 등) 상대팀이 연결한 평균 패스 횟수’를 나타내는 기록으로, 수치가 낮을수록 우리가 적극적으로 압박을 가해 볼을 쟁취하려 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한국은 이번 월드컵에서 경기를 거듭할수록 더 물러섰다. ‘하던대로 할’ 계획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는 게 홍명보 감독의 생각이라면, 멕시코전과 남아공전 압박이 이처럼 소극적이었던 이유는 합리적인 설명이 되지 않는다. 체코전 극적인 승리 후 나머지 두 경기는 안정적인 경기 운영으로 일관하면, ‘32강 정도는 오를 수 있다’는 착각을 한 걸까? 월드컵 무대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판단을 내렸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전반적으로 완성도 높은 경기력을 바탕으로 승리한 체코전 또한, 더 깊게 파고들어 세부적인 기록을 살펴 보면 멕시코, 남아공을 상대로 소극적인 경기 운영을 펼칠 계획이었다는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체코전의 90분 평균 PPDA는 10.75회로 압박 강도가 높은 편이었지만, 스코어가 0-0이었던 전반전 내용은 이와 달랐다. 한국의 체코전 전반 PPDA는 13.78회. 이후 한국은 초반 선제골을 헌납한 시점이 돼서야 압박 강도를 적극적으로 끌어올리며 체코전 후반 PPDA 8.27회를 기록했다.

한국 대표팀의 남아공전 전후반 압박 강도(PPDA)
28.17회 – 전반전 48.0회 – 후반전 초반(46~60분) 7.83회 – 후반전 중후반(61~90분)*63분 실점
남아공전에서는 전반전 0-0 흐름이 이어진 45분 동안의 PPDA가 28.17회였다는 점이 이날 우리가 어떤 게임플랜을 가지고 경기에 임했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놀라움에서 한발 더 나아가 충격에 가까운 기록은 후반전 시작 후 선제골 실점 직전까지, 약 15분 이상의 PPDA가 상식의 선을 크게 넘은 48회였다는 점이다. 이날 기대 이하였던 선수 개개인의 경기력을 옹오할 마음은 없다. 그러나 이 정도로 압박 강도를 낮춰 상대의 공격을 풀어둔 경기력이 나온 원인을 선수 11명의 부진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PPDA 28.17회, 48회는 월드컵에 11회 연속으로 진출한 팀에 주어져서는 안 되는 선택지다. 지난해 7월 동아시안컵에서 우리를 상대한 FIFA 랭킹 156위 홍콩조차도 당시 한국전 PPDA가 19.83회였다.
여론은 홍명보 감독이 월드컵을 약 1년 앞두고 꺼낸 3-4-3 포메이션을 두고 3백 수비라인을 문제점으로 지적했지만, 사실 이보다 더 불안했던 부분은 수비라인 앞에 서는 헐거운 ‘투 미들’ 중원이었다. 황인범-백승호 중원 조합은 상대의 공격 속도가 느린 편에 속한 체코를 상대로 빼어난 호흡을 선보였다. 특히 후반전 상대를 몰아세운 상황 속에서 황인범이 전진해 페널티 지역을 파고들고, 뒤에서 백승호가 이를 지원한 패턴은 결국 동점골과 역전골을 만들어내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 하던대로 해야 했다면, 왜 멕시코와 남아공을 상대로는 두 선수의 도전적인 플레이를 볼 수 없었던 걸까? 체코전 황인범의 전진은 선수 본인의 판단이었던 걸까?

황인범의 개인 통산 월드컵 경기별 상대 박스 안 터치 회수
0회 – 우루과이전(2022) 1회 – 가나전(2022) 0회 – 포르투갈전(2022) 0회 – 브라질전(2022) 4회 – 체코전(2026) 1회 – 멕시코전(2026) 1회 – 남아공전(2026)
남아공전 졸전의 결정적 원인은 대한축구협회의 졸속 행정도, 홍명보 감독 부임이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를 낳은 대표팀 사령탑 선임 절차도 아닌, 오롯이 이날 게임플랜의 완성도를 심각할 정도로 떨어뜨린 리더가 내린 전략적 선택의 패착이었다. 월드컵 본선 경기에서 한 골 차로 패한 결과를 납득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어느 팀도 언제든 선수들의 실수로, 경기력 부진으로 패할 수 있다. 심지어 기자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졸전 후에도 홍명보 감독과 선수단을 비판하지 않았다. 월드컵에서의 실패는 우리뿐만이 아니라 우승 후보들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일 때가 있다.
그러나 남아공전 우리가 선보인 경기력은 납득할 수 있는 범위를 크게 벗어난 결과물이었다. 이번 월드컵은 홍명보 감독이 선수, 코치, 감독 커리어를 통틀어 나선 일곱 번째 본선 무대다. 그는 협회의 결정권자를 제외한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했다. 그러더니 “나는 나를 버렸다. 앞으로는 한국 축구만 있다”는 말로 그동안 축구인 홍명보를 응원하던 자신의 팬들의 마음마저도 무시해버렸다. 졸전 끝에 패한 남아공전을 마친 뒤, 홍명보 감독은 “결과에 대한 책임은 감독인 내가 진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책임이란 과연 무엇일까? 사임일까? 그렇다면 그는 왜 애초에 모두가 반대하는 부임을 한 걸까? 도대체 누구에게 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의 32강 진출을 기원한다. 그렇지만 32강에 진출해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60분이 넘는 시간 동안 도전하지 않는 경기로 일관한 남아공전 졸전이 남긴 충격은 절대 가시지 않을 것이다.
